‘껌 밟아도 안 멈춰요’…티코 만든 대우차 직원, 25살 청년에게 차키 넘겼다

‘껌 밟아도 안 멈춰요’…티코 만든 대우차 직원, 25살 청년에게 차키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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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최원준(25)씨는 올드카 차주다. 1991∼2000년 국내에서만 41만1243대가 팔린 ‘국민차’ 티코가 그의 차다. 누적 주행거리 35만㎞인 1993년식을 지난해 90만원에 구입했다. 상태가 좋은 차는 300만∼400만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연비가 궁금했다. 복합 연비 18∼19㎞, 도심 주행 때는 16㎞ 정도가 나온단다. 티코는 최씨가 태어나기 한 해 전 단종됐다.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무한도전’에서 발로 굴러가는 ‘인간동력 티코’ 편을 봤다”고 했다. 여기저기 녹이 슬고 도장이 벗겨졌다. 주변 반응은 어떨까. “티코를 많이 알아봐 준다”면서도 “‘이게 아직도 굴러가네’라고 말할 때는 상처도 받는다”며 웃었다. ‘33살 티코 형님’을 모시고 사는 청년 차주는 수동 변속기여서 도로가 막힐 때면 클러치를 계속 밟아야 하는 왼쪽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수리 부품 구하기도 어렵지만, 운전석과 보조석에는 90년대식 대나무 카시트를 까는 등 정성으로 모신다. 인스타그램 계정(gumstop―tico)도 있다. ‘티코가 껌을 밟으면 멈춘다’는 우스개에 대한 오마주다.


이 차의 원래 주인은 한국지엠(GM) 직원 김성택(60)씨다. 1991년 대우국민차 창원공장(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입사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생산한 티코를 샀다. 차를 넘길 때 섭섭하지 않았을까. “아내가 ‘위험하게 왜 고속도로를 달리냐’며 싫어했어요. 계속 고속도로를 탔거든요.” 그는 올해 말 정년퇴직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퇴직하면 티코를 관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 친구한테 넘기기로 했습니다.” 현 차주 최씨가 “퇴임식을 하면 불러달라”고 했다. “티코 몰고 가서 자리를 빛내드릴게요.”


두 사람을 연결해 준 것은 비영리 싱크탱크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다. 산업문화유산으로 대우차를 보존·복원하겠다며 김형준(연구소장), 김동영(자문연구원) 등이 뭉쳐 2021년 설립했다. 지난달 30일 대우자동차보존연구소는 인천에 있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함께 올드카 특별전시회를 개최했다.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르망, 씨에로, 티코 등 소형차부터 수퍼살롱, 토스카, 매그너스 등 중형 세단이 두루 전시됐다. 박물관의 클래식차가 아니다. 최씨가 특별전시를 위해 몰고 온 티코처럼 옛날 ‘녹색’ 번호판을 달고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다.


연구소가 보유한 1993년식 뉴 르망도 전시됐다. 대우자동차 부평1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다. 김형준 연구소장이 최근 1만원에 낙찰받았다며 르망 신문광고를 펴 보였다. 한겨레신문 1993년 10월26일치로, 그해 ‘미스 대우에스페로’였던 장미호씨가 모델이었다. 김동영 자문연구원은 “대우자동차의 월드카 전략을 구현한 대표적 차종으로, 1986년 출시돼 1997년 단종될 때까지 105만대 이상 생산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주인공은 대한민국 대표 고급 세단으로 이름을 날렸던 레코드 로얄이었다. 대우자동차 전신인 새한자동차 부평공장(현 한국지엠 부평2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으로, 차주인 강준영(80)씨가 경기도 여주에서 몰고 왔다. 보닛을 열어보니 고풍스러운 모양의 차대번호 명판이 보였다. 이 차가 처음 출시된 해인 1978년 9월에 생산된 차였다. 그해 장인어른이 샀는데, 48년이 지난 지금도 연비가 8∼9㎞, 잘 나올 때는 12㎞까지 나온다고 했다. 브라운색 시트에 아내와 3남매가 함께 한 추억이 얹혔다. “90년대인가 춘천 소양호에 가족과 여행을 갔는데 갑자기 시동이 멈추는 거예요. 이 오래된 차를 누가 고치겠어요.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단골 정비소 직원이 소양호에 마침 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고쳤죠.” 반백살 차량이라 부품 구하기가 별 따기다. 요즘은 가장 중요한 브레이크가 말썽이라고 한다. “밟으면 푹 들어가요. 다행히 캐나다에서 수리 부품을 구해서 지금 공수해 오는 중이에요.”


이번 특별전시는 노동조합 설립 55주년 기념 딸림행사였다. 전시회장 바로 건너편에는 2022년 11월 문을 닫은 부평2공장이 방치돼 있었다. 한국지엠의 내수 축소 경영 탓에 대우차의 화려했던 과거가 더 도드라졌다. 한국지엠은 최근 국내 사업장에 3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지만, 군산공장, 부평2공장, 직영 정비센터의 잇단 폐쇄 이후 한국시장 철수설은 가시지 않는다. 전기차 등 신차 생산도 국내에는 배정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해 내수용으로 판매하는 차종은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트레일블레이저 단 2종이다. 지난달 내수 판매는 808대에 그친 반면, 해외 판매는 4만6273대였다. 국내 완성차 기업에서 글로벌 생산 기지로 포지션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안규백 노조 지부장은 “과거 대우자동차는 경차, 준중형, 중형, 대형 세단까지 11개 차종 이상을 생산하며 현대·기아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수와 수출용으로 겨우 4개 차종을 생산하는 회사로 전락했다”고 했다. 노조는 단순 설비 투자가 아닌 신차 배정과 미래차 생산 계획 등을 회사에 요구하고 있다. 안 지부장은 “현대차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르망, 우리나라 경차의 시초인 티코, 부의 상징으로 불렸던 로얄 시리즈까지 잘 보존해 주신 소비자들 덕분에 오늘 전시회가 열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완성차를 생산했던 부평2공장을 하루빨리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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