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1위에서 헐값 매각까지…현대차, 러시아 재진출 문 닫았다
현대차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 대한 재매입(바이백)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달 31일 협상 시한이 만료되면서, 2023년 말 철수 당시 열어뒀던 러시아 시장 재진출의 문이 완전히 닫혔다.
연 20만 대 찍던 공장
현대차의 러시아 사업은 한때 글로벌 전략의 핵심 축이었다.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한 이후 현지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혔고, 러·우 전쟁 직전인 2021년에는 시장 점유율 20%를 넘기며 1위에 올랐다. 연간 생산량은 20만 대를 웃돌았다.
그러나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방의 대러 제재와 부품 공급망 붕괴가 겹치며 그해 3월부터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현대차는 러시아 당국의 '가동 재개 또는 자산 매각' 압박 속에 결국 2023년 12월 현지 법인 전체를 아트파이낸스에 넘겼다. 매각가는 1만 루블, 당시 환율로 약 14만 원에 불과한 상징적 금액이었다. 장부가 기준 손실액은 2,800억 원대로 추정됐다.
바이백 조건 걸었지만 결국 미행사
매각 당시 현대차는 2년 이내 공장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종전 가능성에 대비한 안전장치였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 2년간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염두에 두고 현지 상표 등록 등 준비 작업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쟁은 3년째 계속되고 있고, 서방 제재 역시 해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 측은 로이터에 보낸 성명에서 "기존 판매 차량에 대한 보증수리와 고객 서비스는 계속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재매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외에도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관세 리스크가 상당 부분 완화된 데다, 중국 생산 거점을 활용한 유럽 시장 공략이 러시아 재진출보다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그룹 내에서 확산됐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가 채운 빈자리
현대차가 떠난 자리는 이미 다른 주인이 차지했다. 아트파이낸스의 자회사 AGR 자동차그룹은 해당 공장을 인수한 뒤 '솔라리스' 브랜드를 유지하며 차량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실적은 매출 294억 루블(약 5천억 원), 순이익 19억 루블(약 329억 원)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더 눈에 띄는 건 중국 업체의 약진이다. 체리자동차 산하 브랜드 재쿠(Jaecoo)가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을 활용해 현지 생산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가 공백을 남긴 사이, 중국 브랜드가 러시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마쓰다도 같은 선택
현대차만의 사정은 아니다. 일본 마쓰다 역시 블라디보스토크 공장 지분 50%를 1유로에 매각하며 3년 바이백 옵션을 확보했지만, 지난해 12월 권리를 상실했다. 프랑스 르노는 6년 바이백 조건으로 현지 자산을 넘겼고,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옵션을 걸어둔 채 철수한 바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생산 거점은 포기하되, 기존 고객 대상 정비 서비스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정세 변화에 대비한 최소한의 접점을 남겨두면서도, 설비 보유에 따른 재무·정치적 리스크는 완전히 털어내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