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가 돌아왔다, 반세기 만에 현대판으로 부활한 AMG 전설의 레이스카

붉은 돼지가 돌아왔다, 반세기 만에 현대판으로 부활한 AMG 전설의 레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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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AMG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와 에르하르트 멜허, 두 엔지니어가 300 SE의 레이싱 엔진 개발을 마치고 메르세데스를 떠나 슈투트가르트 인근에 독립 법인을 세웠다. 회사 이름은 두 창업자의 성과 고향 마을 이름을 조합한 'Aufrecht Melcher Großaspach Ingenieurbüro'—머리글자를 따면 AMG다. 이 작은 엔지니어링 부티크가 훗날 세계 최정상급 퍼포먼스 브랜드로 성장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창업 불과 4년 만에 AMG는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1971년 스파 24시간 레이스에서 AMG가 손댄 300 SEL 6.8이 클래스 우승을 넘어 종합 2위까지 차지한 것이다. 거구의 4도어 세단이 순수 스포츠카들 틈에서 전체 2위를 낚아챈 장면은 당시 관중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빨간 도료를 뒤집어쓴 묵직한 차체가 코너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에 독일 현지 언론이 붙인 별명이 '로테 자우(Rote Sau)'—'붉은 돼지'다. 모욕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어느새 가장 사랑받는 AMG 레전드의 호칭이 됐다.


전 디자인 총괄 고든 바그너, 퇴임 후 꺼낸 비밀 프로젝트



 


 

그 '붉은 돼지'가 디지털 세계에서 반세기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29년간의 메르세데스 생활을 마무리한 고든 바그너 전 디자인 총괄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로테 자우' 컨셉 이미지를 공개했다.


바그너의 상상 속 현대판 '붉은 돼지'는 원본에 대한 경의와 현재의 메르세데스 디자인 언어를 능숙하게 버무린다. 헤드라이트 안에는 삼각별 모양의 LED 조명을 심었고, 오리지널 레이스카의 보조 조명 자리는 둥근 LED 링이 대신한다. 5스포크 휠은 원작을 직접 참조한 오마주다. 현행 모델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절제 있게 녹여내면서도 1970년대 레이스카 특유의 근육질 실루엣은 그대로 살렸다.



 


 


 

이 컨셉은 바그너가 출간한 사진집 『Iconic Design』에 수록된 미공개 작업물의 일부다. 540부 한정으로 제작된 친필 서명본을 권당 75유로에 델리우스 클라싱 출판사를 통해 판매 중이다. 제목에서 겸손함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20년 넘게 메르세데스 디자인의 방향을 결정해온 인물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항공기 바퀴 테스트에 쓰이다 사라진 전설의 실제 결말



 


 


 


 

오리지널 '로테 자우'의 사연은 화려한 전성기만큼이나 극적이다. W109 S클래스를 베이스로 6.8리터 V8 엔진을 얹어 428마력, 최고속도 265km/h를 뽑아냈던 이 레이스카는 스파 이후 프랑스 산업 복합기업 마트라에 넘겨졌다. 마트라는 이 차를 항공기 랜딩기어 테스트 장비로 활용했고, 반복되는 실험 끝에 결국 차체는 폐기됐다. 메르세데스가 나중에 원본 설계도를 입수해 2000년대 중반 복제품을 제작한 것이 지금 전해지는 '로테 자우'의 전부다.


원본의 베이스가 된 300 SEL 6.3은 당시 독일 최속의 양산차이자 세계에서 가장 빠른 4도어 차량 중 하나로 꼽혔다. AMG 손을 거친 6.8리터 버전은 그 성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퍼포먼스 튜닝 하우스로서 AMG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메르세데스가 1999년 과반 지분을 인수하고 2005년 완전 합병하기까지, AMG는 이 레이스카 한 대로 닦아놓은 명성 위에서 성장했다.


바그너가 '로테 자우'를 다시 꺼낸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메르세데스는 지난해 공개한 '비전 이코닉 컨셉'을 통해 과거 디자인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예고한 바 있다. 양산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만약에'의 상상일지라도, 반세기 전 스파의 코너를 돌던 그 붉은 덩치가 21세기 옷을 입고 달리는 모습을 팬들이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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