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넘본다? 레인지로버 GT EV 뒷좌석 미리보니
재규어랜드로버(Jaguar Land Rover)가 브랜드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전동화 전환에 나선다. 그 첫 신호탄이 레인지로버 라인업의 다섯 번째 모델, 순수 전기 SUV GT다. 기존 레인지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벨라, 이보크에 이어 합류하는 모델로, 재규어랜드로버가 예고한 전기차 4종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세 대는 레인지로버 일렉트릭과 레인지로버 스포츠 일렉트릭, 그리고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은 재규어 타입 01이다.
GT는 완전히 새로 짠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용 플랫폼 EMA(Electrified Modular Architecture)를 처음 얹는 모델이다. 레인지로버 일렉트릭과 스포츠 일렉트릭이 쓰는 MLA 플랫폼은 내연기관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범용 구조인 반면, EMA는 처음부터 전기차 전용으로 설계됐고 향후에는 일반 하이브리드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뒀다.
영국 울버햄튼에 위치한 재규어랜드로버 전기 파워트레인 생산 시설에서 GT 프로토타입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다만 외장 디자인과 배터리·모터 등 파워트레인 세부 사항은 아직 공개 시점이 아니라는 조건이 붙었다. 대신 실내는 직접 앉아보고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번 신차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기도 하다.
“고급 주택에서 영감받았다”는 실내
재규어랜드로버 디자이너들은 GT의 실내가 현대적인 고급 주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마케팅용 수사에 가깝지만, 실제로 앉아보면 그 표현이 아주 근거 없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레인지로버 역사상 가장 큰 파노라마 선루프가 들어가 자연광이 넉넉하게 들어오고, 실내 곳곳에는 테이블을 연상시키는 매끈하고 평평한 면이 이어진다. 전반적인 방향은 테슬라(Tesla)식 미니멀리즘에 가깝지만, 그보다 훨씬 정제된 마감으로 완성됐다.
센터콘솔에는 물리 버튼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의 기능이 중앙 디스플레이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요즘 고급 브랜드들이 앞다퉈 채택하는 필러투필러(pillar-to-pillar) 통합형 디스플레이 대신, 아이패드 크기의 중앙 화면과 포드 머스탱 마하-E 수준의 작은 계기판 화면을 따로 배치한 점이 눈에 띈다. 디지털 화면 면적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좌핸들 미국 사양 기준으로 앉았을 때 몸을 기울이지 않고도 화면 오른쪽 끝까지 손이 닿았을 만큼 배치도 실용적이었다. 다만 시승 차량의 화면이 꺼져 있어 소프트웨어 완성도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재규어랜드로버가 그동안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약점으로 지적받아 온 만큼, 이번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그 부분을 어떻게 개선했을지가 관전 포인트로 남는다.
가죽 대신 ‘울트라패브릭’, 뒷좌석은 벤틀리급 겨냥
소재 완성도도 인상적이었다. 시트에는 가죽보다 무게를 50% 줄이면서 친환경성까지 챙긴 ‘울트라패브릭’이 적용됐다. 재규어랜드로버 측은 10년 사용을 시뮬레이션한 뒤에도 새 시트와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실내 테마는 듀얼톤과 섀도 블랙 두 가지로 시작하되, 이후 다양한 개인화 옵션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운전석은 세단과 SUV의 중간쯤 되는 낮은 착좌감으로 설계됐고, 전방 시야도 넓은 편이었다. 스티어링 칼럼에 달린 변속 스토크와 방향지시등 스토크는 조작감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는데, 그동안 접해본 어떤 차량의 스토크보다 또렷한 클릭감을 냈다.
뒷좌석에서는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 앉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쿠션감이 뛰어나고 헤드레스트는 베개에 가까운 감촉을 준다. 168cm 체구 기준으로도 다리를 넉넉하게 뻗을 수 있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GT의 뒷좌석 레그룸이 벤틀리 플라잉스퍼, 포르쉐 파나메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급인 이른바 F세그먼트에서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는 이들 경쟁 모델보다 한층 절제돼 있다. 마이바흐나 벤틀리, 롤스로이스만큼 화려함을 과시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함께 탄 사람이 뜻밖의 만족감을 느낄 만한 수준이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 나란히 놓일 만한 고급감이라는 인상이다.
4인승과 5인승 두 가지 구성으로 나오는데, 실제 구매층은 4인승을 더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센터콘솔에 무선충전 패드 두 개와 컵홀더, 미디어·공조 제어용 터치스크린, USB-C 포트가 달린 암레스트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정공법 택한 전동화
이번에 만난 차량은 콘셉트카가 아니라 양산을 앞둔 프로토타입이었고, 영국 게이든에 있는 재규어랜드로버 엔지니어링 캠퍼스에서는 이미 여러 대의 프로토타입이 최종 도로 테스트 단계를 밟고 있었다.
재규어랜드로버의 전동화 전환은 업계 기준으로 다소 늦은 편이다. 재규어 아이페이스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는 부진했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웨이모 로보택시로 더 알려진 상황이다. 아이페이스 이후 2세대 전기차 라인업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공백기가 있었고, 레인지로버 일렉트릭 역시 개발 기간만 5년 가까이 걸리며 출시가 여러 차례 늦춰졌다. 같은 기간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2년이 채 안 되는 주기로 신모델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재규어랜드로버는 그럼에도 이번 지연이 결과로 증명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개발과 생산 대부분을 자체 역량으로 끌어안는 데 시간을 들였고, 이 과정이 향후 신모델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외장 디자인과 파워트레인 세부 사항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