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배터리 공급 막바지 협의…수주액 10조 웃돌 듯
삼성SDI가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에 처음으로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코앞에 뒀다. 2028년형 벤츠 전기차에 탑재할 각형 배터리를 두고 양사가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문을 연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승지원 회동을 시작으로 올해 3월 유럽 출장까지 벤츠 수뇌부와 접촉을 이어갔다. 최주선 삼성SDI 사장이 동행하며 공급 조건을 구체화했다. 이 회장은 다임러AG 시절부터 벤츠 경영진과 관계를 쌓아온 인물이다. 그가 인수를 주도한 전장 자회사 하만은 현재 벤츠 전기차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을 공급하고 있다. 전장 납품 채널이 배터리 수주의 발판이 된 셈이다.
협력 구조는 유럽 내 생산 거점이나 특정 라인을 벤츠 전용으로 지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신공장 후보지로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체코 등이 거론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토요타 대응을 위해 미국 미시간 랜싱 공장에 전용 라인을 구축한 사례와 닮은 모델이다. "외부에서 배터리를 들여오는 구조로는 원가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수주 규모는 10조 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물량은 수십 GWh 수준이 예상되는데, 차량 플랫폼 주기에 맞춰 7~10년 이상 장기 계약이 체결되는 관행과 전기차 배터리 단가(GWh당 1000억 원 이상)를 감안한 수치다.
삼성SDI 배터리가 올라탈 플랫폼은 MMA(Mercedes Modular Architecture)로 점쳐진다. 각형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는 이 플랫폼은 지난해 CLA 전기차를 시작으로 라인업 확대가 진행 중이며, 2028년에는 A클래스급 전기차 출시도 예고된 상태다.
벤츠가 삼성SDI를 찾은 데는 속사정이 있다. 벤츠가 스텔란티스, 토탈에너지 등과 함께 세운 유럽 배터리 합작사 ACC가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어서다. ACC는 프랑스 두브랭 공장을 13GWh 규모로 시작했지만 수율 문제와 비용 상승이 겹치면서 현재 월 1000대 차량 분량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과 이탈리아 테르몰리 공장 건설 계획은 진작 접었다. ACC 주력이 삼원계 각형이라는 점에서, 같은 영역에 강점을 가진 삼성SDI가 자연스럽게 대안으로 떠오른 구도다. 유럽에서 각형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비중국계 업체가 사실상 삼성SDI 하나뿐이라는 점도 협상력을 높였다.
여기에 EU 규제 방향이 힘을 더한다. EU가 지난 3월 내놓은 산업가속화법안(IAA)은 공공조달과 공적 지원에서 역내 생산 요건과 탄소 발자국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유럽 내 공급망을 다시 짜야 하고, 배터리 업체도 EU 원산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 삼성SDI와 벤츠가 단순 납품이 아닌 생산 거점까지 묶어 협력 방안을 검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SDI로서는 이번 계약이 갖는 상징성이 남다르다. BMW, 폭스바겐에 이어 벤츠까지 품으면 독일 프리미엄 완성차 3강 모두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업체가 된다. BMW와는 46파이(지름 46mm) 원통형 배터리 협력을 확대 중이며, 헝가리 괴드 공장의 양산 장비가 오는 6월 출하돼 현지 세팅에 들어간다.
한편 벤츠는 원통형 배터리 노선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손을 맞잡고 있다. 지난해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2028년 이후 공급 물량은 150GWh를 넘는다. 이 배터리는 AMG.EA 플랫폼 기반 고성능 메르세데스-AMG 전기차에 탑재될 전망이다. 각형은 삼성SDI, 원통형은 LG에너지솔루션으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분업 구조가 벤츠 안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벤츠 전기차 판매는 올해 1분기 5만4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다. 신형 CLA를 앞세운 수요 회복이 배터리 조달 규모를 키우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SDI와의 계약이 성사되면 공급 물량이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