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마력 자연흡기에 수동 6단… 싱어가 '지붕 열린 911'의 궁극을 완성했다

420마력 자연흡기에 수동 6단… 싱어가 '지붕 열린 911'의 궁극을 완성했다

튜9 0 6 0

 


 

캘리포니아의 레스토모드 명가 싱어 비히클 디자인(Singer Vehicle Design)이 자사 역사상 가장 강렬한 오픈톱 911을 내놓았다.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 리이매진드 바이 싱어(Porsche 911 Carrera Cabriolet Reimagined by Singer)'로 명명된 이 차는 1980년대 생산된 와이드바디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에서 영감을 받아, 30년 넘은 타입 964 섀시를 해체한 뒤 현대 기술로 되살린 궁극의 오픈 에어 스포츠카다. 전 세계 75대 한정 커미션으로 제작된다.


싱어는 2009년 영국 출신 뮤지션 롭 디킨슨이 설립한 이래 포르쉐 911 타입 964만을 전문적으로 복원·재해석해 왔다. 아이언 메이든 보컬 브루스 디킨슨의 사촌이기도 한 그는 공랭식 박서 엔진의 배기음을 '음악'으로 여기는 데서 사명을 지었고, 15년간 450대 이상의 커미션을 완성하며 레스토모드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5월 쿠페 버전을 먼저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는 오픈톱이라는 한층 까다로운 과제를 풀어냈다.


코스워스가 빚은 4.0L 자연흡기 플랫 식스



 


 


 

심장부에는 F1 엔진 명가 코스워스와 공동 개발한 4.0L 자연흡기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 자리한다. 420마력의 최고출력에 450N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며, 레드존은 8000rpm을 넘긴다. 싱어가 복원한 자연흡기 엔진 중 처음으로 가변 밸브 타이밍을 도입해 저회전에서의 일상 운전성과 고회전에서의 폭발적인 출력을 동시에 잡았다. 실린더당 4밸브 구조이며, 수랭식 실린더 헤드와 공랭식 실린더를 조합하고 전동 팬을 적용한 하이브리드 냉각 방식은 1980년대 포르쉐 959 슈퍼카의 설계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이 엔진은 지난해 공개된 쿠페 버전과 동일한 사양이지만, 카브리올레에서는 새로 개발한 티타늄 배기 시스템이 더해져 플랫 식스 특유의 사운드를 한층 선명하게 들려준다. 디킨슨 창업자는 "그 유명한 플랫 식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들린다"고 자신했다.


변속기는 6단 수동이 유일한 선택이다. 노출형 시프트 메커니즘이 적용된 높은 위치의 기어 레버를 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 동력은 후륜으로만 전달된다. 터보도, 듀얼 클러치도, 사륜구동도 없다. 순수한 기계적 소통에 모든 것을 건 구성이다.


레드불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스가 해결한 오픈톱의 숙제


카브리올레나 타르가처럼 지붕을 제거한 911은 태생적으로 쿠페 대비 비틀림 강성이 떨어진다. 30년 넘은 964 섀시라면 그 약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싱어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F1 챔피언십을 석권한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의 엔지니어링 조직, 레드불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스(Red Bull Advanced Technologies)와 손잡았다.


레드불 엔지니어들은 964 섀시를 디지털 스캐닝하고 유한요소해석(FEA) 소프트웨어로 비틀림 하중이 집중되는 지점을 정밀하게 파악했다. 그 결과 총 13개의 카본 파이버 보강 구조물을 설계해 모노코크 섀시에 접합했고, 원래 설계 대비 비틀림 강성을 175%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레드불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스의 롭 그레이 기술이사는 "오픈 루프 964에 쿠페와 동등한 다이내믹 퍼포먼스를 부여하되, 무게 증가를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였다"고 밝혔다. 무게 대비 성능의 균형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은 F1 팀에게 가장 익숙한 영역이기도 하다.


'Z 패턴' 접이식 루프, 오픈톱 911의 실루엣을 바꾸다



 


 


 


 

기존 964 카브리올레의 소프트톱은 접었을 때 뒷모습이 볼록하게 솟아 911 고유의 매끈한 라인을 해치는 약점이 있었다. 싱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Z 패턴'이라 명명한 경량 접이식 루프 메커니즘을 새로 설계했다. 지붕을 올리든 내리든 깔끔한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조작은 간결하고 부드럽다.



 


 


 

차체 전체는 카본 파이버로 제작돼 무게를 줄이면서 강성을 높였다. 1980년대 터보 룩 카브리올레에서 따온 넓은 전·후방 펜더가 근육질의 자태를 만들고, 보닛에 내장된 팝업 보조등은 작동 시 상승하고 비사용 시 보닛과 수평을 이루며 사라진다. 리어 윙은 고정식 웨일 테일 스포일러와 속도감응식 자동 스포일러 중 선택할 수 있으며, 프런트 스플리터 역시 투어링 사양과 스포츠 사양이 별도로 마련됐다. 취향에 따라 전·후방 보디워크를 두 세트 모두 구입해 전용 플라이트 케이스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쉬와 미쉐린, 그리고 5가지 드라이브 모드



 


 


 


 

발밑에는 싱어의 터보차저 서비스에서 개발한 서스펜션 기술이 깔린다. 4방향 조절식 전자제어 댐퍼는 운전석에서 세팅을 바꿀 수 있고, 노즈 리프트 시스템도 내장됐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옵션을 지정하면 18인치 센터록 휠 안쪽으로 거대한 디스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쉬와 공동 개발한 최신 세대 ABS, 트랙션 컨트롤, 전자식 안정성 제어 시스템(ESC)은 로드·스포츠·트랙·오프·웨더의 5가지 드라이브 모드로 개입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가 420마력의 힘을 노면에 전달하며, 964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접지력을 제공한다.


수제 게이지와 번니시드 가죽… 실내의 장인정신



 


 


 


 


 

싱어 911의 진가는 실내에서 더욱 빛난다. 운전자 앞에 놓인 5연 계기판은 고급 시계 제작 수준의 수공예 게이지로, 하나하나 손으로 조립된다. 스티어링 휠 너머로 펼쳐지는 이 계기판은 클래식 911의 상징적 레이아웃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정밀도를 더했다.


이번 카브리올레부터 처음 도입된 '스티치드 앤 번니시드(stitched and burnished)' 가죽 이음새 기법은 전통적인 가죽 세공 기술을 싱어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에어컨, 내비게이션, 애플 카플레이 등 현대적 기술은 절제된 방식으로 통합돼 클래식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공개된 두 대의 커미션 차량은 각각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투어링 사양은 퍼시픽 블루 카본 파이버 차체에 탄제린 컬러 가죽 인테리어, 벨벳 코듀로이 센터의 스포츠 시트를 갖췄다. 스포츠 사양은 가즈 레드 차체에 잉크 블랙 가죽과 인테르페렌자 직물, 경량 트랙 시트를 조합했다.


뉘르부르크링에서 TÜV 인증… 레스토모드의 산업적 기준


싱어가 단순한 '개조 공방'이 아닌 이유는 검증 프로세스에 있다. 테스트 차량은 영국 밀브룩, 스페인 IDIADA, 이탈리아 나르도, 독일 뉘르부르크링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시험장에서 수천 마일의 내구 평가를 거친다. 특히 뉘르부르크링에서는 독일 기술검사기관 TÜV의 인증을 취득하며, 이는 레스토모드 업계에서 사실상 유일한 수준의 품질 보증이다.


가격은 '문의'… 수십억 원대 확실


싱어는 공식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다. 매 커미션이 완전한 맞춤 제작이므로 사양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싱어의 일반적인 빌드가 50만 달러(약 7억원) 선에서 시작해, 사양에 따라 100만 달러(약 14억 5천만원)를 훌쩍 넘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쿠페 버전이 100대 한정이었던 것에 비해 카브리올레는 75대로 더 적다. 오픈톱의 베이스가 되는 964 카브리올레 도너카 자체가 쿠페보다 희소한 점도 한 요인이다.


싱어가 그리는 '공랭식 911의 완전체'



 

싱어는 2009년 클래식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DLS(2018), 클래식 터보(2022), DLS 터보(2023), 카레라 쿠페(2025)를 거쳐 이번 카레라 카브리올레(2026)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라인업을 체계적으로 확장해 왔다. 지난달에는 DLS 터보 프로그램의 첫 고객 인도 차량 '소서러(Sorcerer)'를 공개하기도 했다. 700마력 이상의 출력에 9000rpm을 넘기는 이 괴물 같은 911은 카브리올레와는 정반대의 극단을 보여주는데, 결국 싱어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다. 공랭식 911이라는 아이콘이 가진 가능성의 모든 스펙트럼을 현대 기술로 펼쳐 보이는 것.


전기화와 자율주행이 자동차 산업의 대세가 된 시대에, 자연흡기 엔진과 수동 변속기, 후륜구동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조합으로 수억 원대의 가치를 창출하는 싱어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설이다. 하지만 그 역설이야말로 자동차 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75대의 카브리올레가 전 세계 오너들의 손에서 어떤 개성으로 완성될지, 그리고 캘리포니아 해안도로 위에서 플랫 식스의 노래가 얼마나 선명하게 울려 퍼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0 Comments     0.0 / 0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